민족시보 제926호 (00.10.1)


<해설 시리즈 1, >

한청의 역사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위원장 강성실)은 올해 결성 40주년을 맞이하여 11월 19일 도쿄도내에서 축하회를 가진다. 본지는 '한청사' '조직소개' '홍보·교육' '문화서클' 등 한청의 활동을 수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은 12년간 계속된 이승만 독재정권이 4월혁명으로 타도되고 민주주의와 남북통일의 희망이 소용돌이치던 해인 1960년 10월 8일 결성되었다.

한청조직의 뿌리는 해방직후 45년 11월 재일동포청년들이 결성한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에서 연유한다. 50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은 건청을 '대한청년단' (마찬가지로 한청이라 불렀다)으로 재편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4월혁명에 따라 '대한청년단' 내부에서 개혁이 일어나 새로이 '조국의 통일과 독립' '민주주의' '세계평화'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의 강령을 내걸고 '한청'으로 조직개편했다.

한청은 민단의 산하단체이면서도 전국조직을 자주적으로 운영했다. 또 64, 65년의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와 법적지위 요구 관철투쟁, 69년의 '입관법' 반대투쟁 등을 힘차게 전개했다.

70년대에 들어가 박 정권은 민단에 대한 개입을 강화했는데 한청은 민주세력과 협력하여 '민단민주화투쟁'을 전개했다. 이에 대해 민단중앙본부는 72년 7월 7일 한청 간부들을 제명·정권처분하고 한청과 한학동(재일한국학생동맹)을 민단 산하단체에서 취소한다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남북은 72년 7월 4일 조국통일 3대원칙을 담은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청은 조청(재일본조선청년동맹)과 함께 중앙과 지방에서 공동대회를 열었다. 이 공동대회는 나중의 통일운동노선을 확립하는 중요한 투쟁이 되었다.

박정희는 72년 10월에'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체제에 들어갔다. 이에 일본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씨는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반박투쟁'을 선언했다. 재일민주세력과 김대중씨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한민통 한통련의 전신)를 결성하여 '반독재민주화'를 전개하기로 합의. 한청도 주요한 단체로서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김대중씨가 73년 8월 8일 한국중앙정보부(KCIA)에 납치된 이후 맹원과 조직은 전심전력으로 구출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79년 박정희가 암살되고 유신독재체제는 붕괴하고 서울의 봄을 맞이한다.

박정희 암살 후 군의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80년 5월에 광주시민을 대학살하고 정권을 강탈했다. 한청은 한민통과 함께 다음달 도쿄에서 '광주대학살 규탄 희생자추도집회'를 열고 전두환 등의 학살만행을 널리 폭로했다. 81, 82년에 도쿄에서 열린 '한국민주화지원긴급세계대회'에도 참가했다.

전두환은 김대중씨를 '내란음모죄'로 구속하면서 실제는 한민통의 의장을 이유로 처형하려 했으나 한청은 8개월에 걸친 연속투쟁으로 김대중씨의 생명을 구해냈다.

80년대 초 전두환, 레이건, 나카소네 정권은 한미일 3국군사동맹체제를 급속히 진전시켰다. 한청은 이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매년실시된 팀스피리트(한미합동군사훈련)등 한미의 전쟁책동을 집회 등을 통해 반대, 규탄했다.

한민통은 84년 제13차 중앙위원회에서 그간의 투쟁을 정리하여 새로운 강령으로서 '자주 민주 통일'을 내걸었는데 한청은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중에 운동노선으로 하게 된다.

90년대의 특징은 통일운동이다. 80년대 말 국내의 민족민주세력은 남 북 해외의 3자가 범민족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한통련 등 재일민주세력은 범민족대회 추진운동을 전개, 90년 7월에 '범민족대회 지지 해외한국동포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일관하게 서울에서 범민족대회를 열 수 있도록 노태우 정권에 요구했다.

7·4남북공동성명 공동대회 이후 통일운동을 줄기차게 계속해온 한청은 이러한 운동에 전조직적으로 참가했다. 90년 8월 한청은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에 일본지역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50여명의 청년을 파견했다. 범민족대회는 매년 판문점 등 각지에 열리고 있는데 한청은 선두에서 투쟁해온 것이다.

한청은 남 북 해외의 통일세력이 3자연대조직으로서 결성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에 참가하는 동시에 청년학생의 통일운동체로서 92년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을 결성하여 해외본부의 일익을 담담하고 있다.

한청은 민단의 산하단체 취소라는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전국조직을 독자적으로 운영, 발전시켜왔다. 이것은 재일한국청년이 한국사에서 자랑할수 있는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민족시보 www.korea-ht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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