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904호 (00.1.21)


<초점>

한국전쟁 때 군 경이 재소자 수천명을 처형

'한국전쟁시에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 1,800명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총살이 있었다'는 사실이 미국의 비밀문서 공개로 드러나 미군의 노근리 등 양민학살과 고엽제살포문제에 이어 한국전쟁시의 '숨겨진 사건'이 또 하나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한국일보가 보도했다.(관련 자료)

문제의 문서는 주한미대사관 육군무관 보브 에드워드 중령(당시)이 작성하여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한 제2급 비밀문서 '한국의 정치범 처형'과 제3급비밀문서 '한국육군헌병에 의한 처형'의 두 보고서이다. 더구나 이 문서에는 처형 현장을 찍은 사진 18매와 7매가 각각 첨부되어있다.

'한국의 정치범처형'에 따르면 전쟁발발 직후인 50년 7월 첫주, 대전형무소에서 3일간에 걸쳐 정치범 1,800명이 집단 처형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처형명령은 의심할 여지없이 최상층부에서 내렸다'고 기록되어있어 한국정부 및 군 상층의 명령계통의 지시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 '서울함락 직후에 정치범이 적군에 의해 석방되지 않도록 정치범 수천 명이 처형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도 쓰여있어 대전형무소 이외에도 대구형무소 등에서 정치범에 대한 처형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육군헌병에 의한 처형'에 따르면 피해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하던 사람들로서 51년 4월에 대구근교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국내에서는 피해자의 실태와 명령을 내린 '최상층부'가 누구인가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6일에는 대전시의 시민단체인 참여자치시민연대가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정부의 기록보존소와 법무부 등에 학살사건에 관한 자료의 정보공개를 요청하는 한편, 학살현장 발굴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보도한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있었나, 대전형무소에서 희생된 정치범은 누구인가(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제주 4·3사건 관련자'들이 많이 수감되어있었다), 명령을 내린 '최종책임자'는 누구였나, 정치 군사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미군이 이 참극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었나, 현장사진을 미군이 촬영한 이유는 무엇 인가 등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전국연합도 논평을 통해 보고자료가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으며 학살과정을 미군이 기록한 점으로 보아 미군이 학살을 지시,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에 2, 3급 기밀문서뿐만 아니라 1급비밀문서를 공표 하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11일에도 한국해군이 50년 7월 경 포항에서 사전 구속한 주민 200명을 해상에서 처형하여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진 사실을 보도했다.

미국이 깊숙이 관여한 한국현대사의 '은폐된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한국정부도 진상규명의 방관자로만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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