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96호 (99.10.11)


논단

일본의 대북 적대정책을 추궁한다

마에다 야스히로(기타규슈대학 교수)

49년만의 경제'제재'완화·해제의 의미

클린턴 미정부는 9월 17일 페리 조정관의 보고서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일부 해제할 결정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1950년 한국전쟁이래 49년만의 융화정책으로의 전환이며 반세기에 걸쳐 계속된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의 변경에 이어지는 요소를 포함한 극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94년 10월의 북미 핵합의를 토대로 하여 9월의 북미 미사일교섭(베를린)에서 양국관계는 착실하게 전진했다. '핵과 미사일'을 교섭재료로 초대국 미국과 동아시아의 소국 북조선이 숨막히는 외교교섭을 전개했다.

당사자의 교섭능력 및 그 성과로 보아 20세기 후반의 세계외교사에 남는 2국간외교가 될 것이다. 북조선은 즉시 미국의 '제재'조치완화를 환영하고 "북미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위급협의를 하여 보다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회담시기에는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다"고 공식표명했다.

예방외교의 모범 북미합의

미국은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해 핵의혹 시설이라고 주장, 금년 6월에는 장거리 미사일의 재발사 설이 한미일3국에서 범람했다. 양쪽 다 북조선을 적대국으로서 그 말살을 주장하는 미의회 보수세력과 군사관계자 의사가 배경에 있었다. 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클린턴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을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북조선은 핵개발이나 미사일실험은 "국가의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으며 핵·미사일자체의 개발, 보유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북미양국은 한국전쟁의 교전국 관계에 있으며 항상 전쟁재발의 위험을 내포하여 왔다. 그러나 휴전이래 46년 동안 대규모의 충돌이 없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소국인 북조선의 외교노력에 의한 것이 크다. 초대국의 원정대군을 그동안 못박아 침묵시킨 것은 아시아 처음의 '예방외교'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재발방지로

클린턴 대통령은 페리 전국방장관을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북조선정책을 재검토시켜왔다. 미의회내의 반발을 무마하고 외교 득점을 확대하고 싶다는 속셈을 들 수 있으나 주한미군 유지가 한계점에 달했다는 것이 큰 이유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재검토는 재일미군·기지의 존속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미일안보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재검토에도 이어질 것이다.

페리 조정관은 보고서발표와 동시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다음과 같이 말한 부분에서 주목을 끌었다.

"미국이 압력을 걸어도 북조선 체제는 붕괴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정권을 교섭상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40년 이상 지나는 동안,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전쟁의 위협이라는 안개는 사라져가고 있다. 반세기에 걸쳐 말살, 붕괴를 전제로 구축해온 대북조선정책을 근본적으로 검토하여 드디어 '붕괴시키는 것이 불가능'이라는 인식으로 바꾸어 적대관계를 해소할 방침전환을 내건 것이다"

제재조치 포기한 미국

미국은 소국과의 교섭에서 타협이나 양보를 한 예가 없다. 이번에도 적대국에 대한 전통적인 철권외교, 혹은 함포외교를 변경했다는 증거는 없다. 과거 일본은 미국의 경제 봉쇄 망에 손을 들고 전쟁으로 내몰렸다. 전후 구소련·중국 등도 가혹한 대공산권금수조치에 시달렸다. 모두가 '제재'(생크션)라고 불리는 조치였다. '제재'라는 것은 강자가 정의를 독점하여 약자를 도덕이나 관습, 법규, 규범을 이탈했다하여 징벌을 준다는 개념이며 미국이 세계의 경찰관으로서 군림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고김일성 주석은 때때로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의 '제재'조치를 받아왔으나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왔다"고 표명하고 미국을 교섭 테이블에 앉게 하여 휴전협정에 대신하는 평화협정실현을 지향했다. 그리고 무력으로는 미국에 이길 수 없는 소국으로서 '예방외교'에 철두철미했다. 미국이 스스로 내건 '제재'를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내리는 결과로 될 것을 북조선지도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오부치 정권의 외상, 관방장관들은 98년 여름의 인공위성발사 이래 "위성도 미사일도 일본의 위협에는 다름없다"는 어설픈 표현으로 북조선에 감정적 반발을 부채질했다.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오부치 정권의 그 후도 무엇하나 외교상의 국면타개의 길을 찾을 기색이 없다.

냉전사고 탈각 못하는 오부치 정권

미국의 보수강경파에 종속되고 대북조선 포위망을 충실히 형성해온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북조선정책 재검토는 "2층에 올라간 새에 사다리를 치워버린" 충격이 되었다. 아니면 미국에 대북조선융회정책을 내걸지 못하도록 애원해온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심각한 대미불신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북미 베를린협의에서 시작되는 완화책은 동아시아의 냉전구조에 통풍구를 뚫는 제1보가 되었다. 또 한편에서는 오부치 수상은 외상을 교체했는데 조선정책의 극적 변화를 가름할 징조는 아니다.

북조선의 백남순 외상은 유엔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식민지통치의 청산을 전제로 관계개선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대화개시의 시그넬을 보내왔다. 일본 외교당국이 북조선과 정면에서 마주앉지 않으면 안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궁지에 몰려 억지로 응할 것인가 자주독립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그날을 맞이할 것인가 어느쪽이던 선택해야 할 날이 박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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