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64호 (98.10.11)


해설

김대중 정권하의 인권탄압 실태 (3)

수배자에게도 준법서약서 요구

"김영삼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단에 저항하다 억울하게 수배중인 학생 운동가 40여 명과 양심수들은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한총련 활동을 하다가 김영삼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된 7명의 남녀 학생이 8월 9일부터 2개월 이상, 서울의 조계사 경내에서 정치적 수배자 전원의 수배해제와 양심수 석방 등을 요구하며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다.

수배기간이 5년이 된 농성단 대표인 오창규 씨는 86년 전남대 입학 후, 93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남총련 의장 활동을 하다 수배를 받았다. 그외 수베기간 2년이 1명, 1년이 5명이다.

이들이 농성에 들어간 것은 김대중 정권의 8·15특사 때 정치수배자도 특사의 범위에 포함하여 수배를 해제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 였다. 이들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 "김영삼 정권도 출범 초기엔 3백여 명의 정치수배자들에 대해 불구속 수사, 기소유예라는 실질적인 수배해제 조치를 취했던 만큼 국민의 정부라는 현정권은 더욱 적극적인 수배해제 조치로 과거청산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만3천여 명의 시민서명과 함께 두 번에 걸쳐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14일에는 한겨레신문에 의견광고도 냈다. 그러나 김 정권은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하면서 이들 만이 아니라 수백명에 달하는 학생과 노동자를 한사람도 수배 해제안했다.

오 씨들은 18일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8·15 특사 전체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기만적인 조치"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55명의 수배자 명단도 함께 공개했다. 그리고 22일에 전국연합 민가협 등과 조계사에서 '정치수배 해제·양심수 전원 석방·인권신장을 위한 시민·학생 결의대회'를 개최하며 이후 서명운동 등을 통해 국민에 널리 호소하기로 했다.

또 오 씨들은 9월 13일에 민주세력과 함께 '정치수배자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개최했다. 모임에서는 오 씨 어머니의 편지가 낭송됐는 데 그 내용은 민주세력이 어떻게 정권부터 탄압을 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싶은 마음을 절절히 쓴 다음 일가의 '투쟁사'를 말했다. 교사였던 오 씨 아버지는 80년 광주민중항쟁에 참가하여 학살 현장을 보고 "내 사랑하는 제자들 다 죽는다"고 신음하고, 89년에는 전교조 활동 때문에 교단에서 쫓겨나서 감옥으로 끌려가고, 94년에는 범민련 결성주도 혐의로 또 3년간 옥살이를 했다. 오 씨 쌍둥이 형은 87년 6월 항쟁 때 최루탄의 직격탄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

어머니는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내 아들 수배 풀리고, 내 남편 사면 복권 될 줄 알았는데, 아니 모든 아들, 딸들 쇠사슬이 다 풀릴 줄 알았는데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민주대통령, 통일대통령 세워야 한다고 그리도 애쓰던 너희 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더란 말이냐"고 절규하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총련 학생을 어서 빨리 풀어주기를 호소했다.

대의원은 정치수배 받게

김 정권은 전 정권의 정치수배를 해제하지 않는 것만 아니다. 정권 출범 6개월 사이에 427명의 양심수를 구속했으나 국가보안법이나 노동법 위반 혐의로 수배한 인원수는 그보다 더욱 많다. 올해 한총련 출범에 대해 김 정권은 600명을 넘는 대의원의 전가정에 대의원을 탈퇴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하겠다는 편지를 보냈으며 대의원 대부분이 수배를 받고 있다.

또 민주노총이 9일에 발표한 노동자의 구속과 수배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김 정권 하에서 107명이 구속되었고 125명에 체포장이 발부되어 수배중이다. 전 정권 당시 가장 심했던 95년의 탄압 때도 노동자의 구속 수배자 수는 한해 175명이었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민의 정부'의 이념으로 했다. 국민의 모두가 민주주의의 실천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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