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48호(98.4.1)


가료

빈곤의 세계화 (1)

본지는 3월11일자에서 '빈곤의 세계화-IMF 경제신탁통치의 실상'(미셀 초스도프스키 지음, 이대훈 옮김, 서울·당대출판사 펴냄)의 개요를 소개했다. 이 책은 서문, 제1부 세계적 빈곤과 거시경제적 개혁, 제2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제3부 남아시아와 남동부 아시아, 제4부 라틴아메리카, 제5부 구소련과 발칸반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호부터 '서문'과 제1부 제1장 '빈곤의 세계화'를 수차례에 나눠 게재한다.

서문

지구의 위기는 세계의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각국의 경제는 서로 맞물려 있고 (약 750개의 범세계적 기업이 소유·지배하고 있는) 상업은행(commer cial bank)과 사업체는 이미 경제적 국경을 넘어서 있는가 하면, 국제무역은 통합되어 있고 금융시장은 컴퓨터 연결망을 통해 전세계가 한순간에 연결된다. 현재의 위기는 양차대전 동안의 위기보다 훨씬 복잡하며, 그 사회적 결과와 지정학적 충격은 특히나 냉전의 불확실한 유산으로 인해서 훨씬 광범위할 것이다.

세계경제 흐름은 '전세계적 외채상환 과정'에 의해 '조절'되고 있는데, 이같은 외채상환 과정은 국민국가의 제도를 위축시키고 고용과 경제활동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권의 외채 부담은 2조 달러에 달한다. 개발도상국가(이하 개도국)는 하나 같이 자국 통화의 붕괴로 말미암아 불안전한 상태인데, 이 결과 사회적 갈등이라든가 종족 갈등, 내전을 겪기도 했다. 이 책은 80년대 초부터 국제 채권단이 개도국에 부과하는 경제적 구조조정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시 경제적 개혁은 전후(戰後) 자본주의 체제와 그 파괴적 발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일국적 또는 국제적 차원에서 채택되는 거시 경제적 관리는 세계경제 질서를 출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제반 개혁 조치는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시장체제가 아니다. 즉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체제가 후원하는 이른바 '구조조정 계획'은 비록 신자유주의 담론에 의해 지지되고 있으나 신개입주의적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80년대 초반의 외채위기 이래로, 자본은 국가제도 와해와 경제적 국경 붕괴, 수백만에 이르는 빈공층 양산으로 귀결된 거시 경제적 정책을 통해 최대 이윤 추구라는 자기 목적을 실현해 왔다.

거시 경제적 개혁의 세계화

경제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은 브레턴 우즈가 담당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ntern 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은 (이전에는 정부간 기구의 관장하에 있었지만) 강력한 국제 관료체제일 뿐, 이들 국제 금융기관이나 그 기관의 대주주(부유한 국가들의 정부)들이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는 관료조직으로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기능하고 주요한 경제적·금융적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절기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논란이 되는 것은 시장 요소를 의도적으로 조작해서 각국의 경제를 감독할 수 있는 이러한 국제 관료기구의 권한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세계경제 체제의 성격을 논하면서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정책개입 수단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뒷 부분에서는 개발도상에 있는 주요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서, 소말리아나 르완다, 유고슬라비아와 같이 국가 전체가 파괴된 나라들을 포함하여 IMF와 세계은행의 감독 아래 추진한 개혁정책으로 경제가 개편된 나라들의 사례를 고찰한다.

저임금노동의 경제

세계경제 체제에 관한 분석은 범세계적 실업이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IMF가 주문하는 개혁은 많은 나라에서 '노동비용 통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비용 최소화'는 소비 시장의 확대를 제약한다. 즉 거시 경제적 개혁의 타격으로 전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이 빈곤화됨에 따라 구매력이 심각하게 축소된 것이다.

이리하여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소득 수준이 낮아져서 생산이 위축되고 또 이것은 더 많은 공장과 기업의 폐쇄 및 도산을 유발한다. 이같이 위기의 각 국면에서, 경제의 흐름은 범세계적 생산과잉과 소비 수요 감소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세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거시 경제적 개혁은 사회의 소비 능력을 위축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팽창을 저해한다.

과잉생산 체제 아래서 세계적 기업과 무역회사들은 개도국의 국내 생산 기반을 파괴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만, 다시 말해 내국 시장과 생산의 연관성을 끊어 냄으로써만이 자기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체제에서 개도국의 수출 증대는 국내 구매력의 축소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빈곤은 공급 측면에서의 투입 요소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장'은 구 생산체제의 해체-중소기업이 도산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제적인 유통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생산체제로 변화될 것을 강요받는다든가, 국영기업이 민영화 혹은 폐업하고 자립적인 농업생산자층이 빈곤화한다-와 동시적으로 창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경제 체제는 전세계 저임금 경제의 강화와 새로운 소비시장의 창출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힘을 두 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또 여기서 전자는 후자를 약화시킨다. 세계적 기업의 시장 확대에는 필연적으로 국민경제의 파편화와 파괴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자금과 재화의 이동에 장애가 되는 것들은 제거되고 각종 여신 규제는 철폐되는가 하면, 토지와 국가재산은 국제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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