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48호(98.4.1)


자료

감옥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홍근수(향린교회 목사)

'인권운동사랑방'의 (인권하루소식)에 게재된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의 글 '감옥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를 싣는다.

김대중 정권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통령 취임 경축 대사면을 단행하였다. 스스로 '건국이래 최대의 사면'의 은전을 입은 사람들이 무려 552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일견 그렇게 말할 만한 대규모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깊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추스르기 어려움을 느낀다. 이번 대사면에서 석방된 양심수는 불과 74명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민가협 등 재야 인권단체에서 무조건 석방하라는 양심수 총수인 478명 중 15%에 불과한 숫자이다. 이중 533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면·복권이란 것은 고작 교통 벌점 삭제이고, 공무원 징계 말소가 17만 여명, 행정사범 등을 복권해 준 것이 3만 여명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란 것이 국민대화합이란 이름으로 부정 부패 공무원들이나 도독놈들이나 파렴치범들을 사면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가? 간첩 생산과 북풍 조작을 전문업으로 삼고 있는 안기부나 공안검찰에 의한 죄인 아닌 죄인인 양심수들 400명 이상을 그대로 감옥에 가두어 두고서 국민의 정부니 새 역사니 국민대화합이란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양심수 석방 수준은 국제사면위나 유엔이나 이 나라의 종교계의 양심수 석방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실패작이다. 심지어는 종전 군사독재정권이나 사이비 문민민주정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실망 섞인 국민의 탄식이 들린다.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선 다음날로 광주학살과 국정 파괴의 원흉들마저 과감히 석방할 수 있는 결단력을 보여 통큰 정치를 기대했던 김 대통령이 정작 양심수 석방은 대사면의 모양 갖추는 데에 이용되었을 뿐이었고 552만에 걸친 대폭적 사면 단행은 숫자 불리기 노름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기껏해야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격이 되고 만 것이다. 색깔 의심을 받고 있는 김 대통령의 새 정권의 안 문제와 보수 우익 쪽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 나머지 불가피한 '작품'이었나?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대사면을 단행하면서 했다는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그는 이번 사면 조치를 발표하면서 "재범의 우려가 있는 자, 앞으로도 체제 전복 활동을 할 우려가 있는 자는 제외했다"고 했다. 그에게 묻고 싶다. 지금 옥중에 있는 양심수 중에 과연 '정부 전복'이나 '체제 전복'을 꾀했거나 꿈꾸는 사람, 또 그럴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단 말인가? '체제전복활동 우려' 운운으로 이들을 석방하지 않은 것은 과거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과 천하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정당화일 뿐이고 '민주화'와 '민족대화합'의 의지 부족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으로 8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던 분이고 또 취임사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성실 이행을 천명한 정치가이다. 앞으로 그 말을 번복할 것이 아니라면, 이번 대사면의 기회에 옥문을 활짝 열고 양심수들을 모두 석방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한총련 학생들과 범민련 인사들과 장기수들을 비롯하여 노동해방운동의 지도자들인 박노해 씨와 백태웅 씨 등과 평화통일운동의 상징인 김낙중 씨와 손병선 씨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춤을 추고 나와서 가족의 품에 안기게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는 이유는 대사면이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사면에 포함되지 않은 양심수들은 다름 아닌 이 땅의 진정한 민족인사들과 통일꾼들이다. 문제는 이 양심수들을 체제전복세력으로 보는 낡은 의식이고 그래서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야만 정권이 안정되고 국가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반역사적인 낡은 의식이다.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이들이 자유를 숨쉴 수 있도록 감옥 문을 활짝 열어 이번 사면 조치에서 제외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 이것만이 국민대화합과 민족대화합의 길이고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조명해 보이는 길이다. 그리고 새 정권이 국민의 정부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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