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48호(98.4.1)


논설

'북풍' 공작의 원흉인 안기부는 해체되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총리 인준 문제로 엉키기 시작한 정국이 '북풍 비밀 문건'을 둘러싼 공방을 거치면서 여야간의 생사를 건 정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를 친북인사로 몰아 낙선시키기 위한 안기부 '북풍' 공작의 대강이 드러나면서 수구세력의 필사적인 저항이 시작되었다. 북풍 공작의 책임을 정치권에 전가시키려는 의도로 재편집된 '해외 공작원 정보보고(이대성 파일)'에서 비롯된 '북풍 정국'은,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자해사건을 계기로 새 정부와 수구세력의 혈투로 돌변하여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안기부의 범죄집단을 옹호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조작된 '북풍' 문건의 국민회의 관련 부분을 물고 늘어지면서 저돌적인 반발을 하고 있다. 이에 여권은 북풍 공작을 사주한 배후세력의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서 북풍 시비가 여야의 색깔 논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북풍 조작의 진실은 오리무중인 채 여당과 야당이 서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북쪽과 내통했다"고 아귀다툼하는 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기(國基)를 뒤흔들 내용이 들어 있다며 '북풍'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정치권의 태도는 의구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권이 비밀문서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바람에 온갖 루머가 보태져 북풍 수사를 통한 안기부 개혁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퇴색해 가고 있다.

국기를 흔들 사항이 있다면 차제에 모두 공개하고 안기부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쳐 안기부 해체의 계기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덮어 버리려는 듯하다. 국기를 흔들 내용이 있을수록 국민이 이를 알도록 진상을 공개하는 것이 당연하며, 관련자를 의법 처리해야 마땅하다. 많은 국민들은 북풍 비밀문서를 공개하고 국회의 국정조사나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사실 여부를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대성 파일'을 열람한 국회 정보위원들의 입을 통하여 거명된 정치인의 명단과 내용이 이미 상당 부분 알려졌기 때문에 문건의 전모를 공개한다고 해서 국기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무엇이 두려워 안기부 개혁의 호기를 쥐고도 멈칫하는지 알 수 없다. 정치적인 이유로 적당한 선에서 봉합하려면 할수록 새 정부의 개혁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커질 뿐이다.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민의 정부'라면, 국민들이 50년 동안 염원해 온 '안기부 해체'를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 안기부의 범죄 사실이 드러난 이 때가 안기부 해체의 호기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는 우물쭈물하며 수구-보수 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같아 안타깝다. 지금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김 대중 대통령 임기 동안 이 문제로 시달릴 공산이 크다. 새 정부의 장래를 위해서도 안기부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안기부를 창설한 김종필 총리서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대통령은 '북풍'의 진상 규명에 힘써야한다고 말하는데, 김종필 씨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기부의 창설자를 총리로 둔 채 새 정부가 안기부를 개혁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북풍 공작은 분단의 모순이 집약된 비극적 사건이다. '김대중=친북세력'이라는 집단적 최면에 걸린 안기부가 정권 안보를 위해 선거 때마다 공안정국·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내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분단체제에 기생해 온 안기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각종 용공조작을 일삼으며 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현재의 안기부를 방치하면 정치개혁도 민주주의의 발전도 조국통일도 어렵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안기부는 원래 태어나서는 안될 기구이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척결해야 한다.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분단의 고통은 지속되고 통일의 길은 멀어진다. 김 대중 정부가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려는 데도 안기부는 부적절하다. 안기부의 이름만 바꾸면 옛날 중앙정보부 시절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안기부의 간판만 바꿔단다고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간판을 내려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용단을 바란다.

이정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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