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1192(10.11.01)


<인터뷰>

손형근 한통련 의장에게 듣는다

 

  \한청은 언제부터 참가했습니까.

 

  "21살 때인 72 4월에 한국어를 배우려고 민단 후세지부에 갔는데 한청이 국어강습회를 주관하고 있었고 민단 안에 있었던 한청후세지부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 직후 다른 현에서 일하게 되어 활동은 못했지만 1년후 오사카에 돌아와보니 한청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72 7.4남북공동성명 지지대회를 추진한 것 등을 이유로 한청 간부가 민단의 탄압을 받게 되었고 사무소도 폐쇄되어버렸어요. 혈기 왕성했던 때라 '질 수는 없다'는 오기로 73 2월 김대중씨가 강연한 것으로 유명한 전국 동기강습회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강습회에 참가하여 한청의 활동목적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전국에 많은 동지들이 있다는데 고무되었습니다. 그 후 김대중씨납치사건 충격이 식기도 전에 한청맹원으로서 한민통결성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활동이 본격화한 것이군요.

 

  "'민단 산하단체 취소처분' 등으로 한청을 둘러싼 환경이 어렵게 되어 간부의 운동에 대한 결의가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결의를 다지고 74년 초부터 한청오사카후본부 상근 활동가가 되었어요. 그때는 아무런 생활보장도 없었지만 결의만 하면 누구라도 한청 상근자가 된 시대였습니다(웃음)".

 

  "상근 활동가가 되고 나서는 독재 반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거리홍보, 밤에는 지부의 학습활동이 아니면 호별방문, 심야에는 삐라 호별 배포와 스티커 붙이기, 맹원과 격렬하고 즐거운 토론을 겸한 회식이라는 나날을 보냈지요. 그때 내가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탄압으로 소멸된 한청지부를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청년들을 한사람 한사람 모아서 교육하고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지부사무소를 잇달아 개설해나갔어요. 정말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78년 한청 오사카후본부 위원장에 취임한 후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약관 26세 원기 왕성한 청년위원장입니다. 그런데 취임 후 곧 심각한 재정난을 겪어야했습니다. 금고 안은 텅 비었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낙담한 나머지 일주일간 자리에 들어눕게 되었어요.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지며 재정활동을 개시한 결과 동포 상공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당시 본부에는 4명의 상근 활동가가 있었고 상근자를 더 늘릴 생각이었는데 재정이 전혀 따라가질 못했어요. 그런데 본부의 이런 궁색함을 솔직하게 각 지부 간부들에게 호소하자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지부가 본부에 상근자 지원금을 냅시다'하고 선뜻 나섰고 4개 지부에서 매달 본부에 지원금이 오게 되었습니다. 재정문제보다 더 감격한 것은 뜨거운 동지애와 운동에 대한 열의였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신선하게 떠오릅니다".

 

  "위원장 재임중 한국에서는 박정희 사살사건, 김대중씨 사형판결, 광주항쟁, 부산미문화원사건, 노동자·학생운동의 고양 등 대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모든 운동을 전력을 다해 해냈고 85 33살 때 한청을 졸업했어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한민통의 탁월한 지도아래 우리들 한청의 강력한 투쟁으로 권좌에서 끌어내렸다고 지금도 자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한청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첫째로 한청은 일관하게 자주적인 조직입니다. 억지로 한청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한청맹원은 자기자신이 의지 결정의 주체임을 똑똑하게 자각하면서 결단하고 행동합니다. 또 그것을 조직이 보장하고 있어요. 재정도 기본적으로 자력갱생입니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온 겨레의 이익을 위해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조직이라는 것이 한청의 첫째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한청은 자주·민주·통일운동의 든든한 주체입니다. 한국에서 독재정권의 탄압에 직면하면서 투쟁하는 것도 큰 곤란을 동반합니다만 해외에서 운동을 결의하고 계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이야기를 할  여유는 없습니다만 반독재투쟁, 자주화운동, 통일운동의 선구자는 틀림없이 한청입니다. 무엇보다도 한청 맹원 모두가 한청의 위대성을 학습하고 자각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한청은 대단히 우수한 투쟁조직입니다. 투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친목단체나 계몽단체는 많이 있습니다만 한청은 동호회가 아닙니다. 자주·민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50년간 투쟁해온 한청은 투쟁조직으로서 강하게 단련되어있습니다. 중앙본부의 지도아래 전국이 하나로 굳게 단결한 조직이며 동시에 방침 결정기관과 집행기관이 분리되지 않고 있는데서 결정 즉 실천의 성격을 가진 조직입니다.  투쟁우선의 조직성격이 자주·민주·통일운동을 추진하는 데서 큰 위력을 발휘해왔습니다".

 

  "넷째로 한청은 지역동포청년의 민족교육을 야간학교 형태로 담당해왔습니다. 일본학교에 다니는 동포청년이 많은 가운데 한청이 해온 민족교육의 실적은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청은 청년들에게 조국의 현상을 가르치고 조국통일을 위해 행동할 것을 솔직하게 제기합니다. 교육과 실천을 분리하지 않는, 즉 배우면서 투쟁하고 투쟁하면서 배우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한청조직 입니다".

 

  \한청의 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간은 원래 올바른 것은 스스로 자진해서 해나갑니다. 다만 인간의 자주성을 이끌어내고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합니다. 역사와 현상을 똑똑히 인식시키고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변혁하면 인간이 평화롭고 평등하고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가 그러한 것을 학습으로 의식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주성은 의식화에 의해 보장됩니다. 앞으로 학습사업을 더욱 정비·강화해주기 바라며 이를 위해 한통련도 힘을 보탤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동포청년이 한청에 입문하도록 창조력을 발휘하여 노력해주었으면 합니다. 대담한 발상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한청 조직확대를 위해 한통련도 함께 고민해나가고 싶습니다".

 

  \12 5일 결성 50돌 기념행사와 관련하여 한마디 부탁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말한 귀중한 말들의 중복을 피하고 한마디만 발언하겠습니다. 자주·민주·통일운동은 아직도 승리하지 않았으며 이 투쟁에서 승리할 책무가 한청에 있다는 것입니다. 50돌 행사에서는 한청이 2년후의 정권 선택기에 분단세력을 패배시키는 투쟁에 나선다는 결의를 더욱 다져주었으면 합니다. 50돌 행사는 반드시 승리를 향한 대축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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