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1118(07.08.01)


<독서안내>

 '기억의 화장-재일을 산다f  

  황영치 지음, 가게서방 발행 정가 2800

 

 '재일'의 기억을 묻어버려서는 안된다

 

  이제 한류 붐의 그늘에 가려져 재일조선인의 역사도 문학도 잊혀져버리려 하고 있다. 더군다나 '북한'때리기 선풍 속에서 재일조선인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재일"북한?'적 이미지가 일본인 속에 심어져있다는 사실도 불식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1970년대에 이회성이나 김학영이 화려하게 일본문단에 데뷰했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역경 속에서 빛을 발한 재일조선인문학은 폐색된 일본문학에 통풍구를 뚫었고 조선문제 이해자를 낳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새로운 이해자를 생산하면서도 일부의 몰이해 자를 '역사수정주의'라는 배타주의로까지 키워버렸다.

  현실은 어떤가. 일본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재일'은 충분히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도 선거권을 포함한 권리의 대부분이 박탈되고 있다.

  황영치의 '기억의 화장'은 우리들 일본인이 잊어버리려 하고 있는, 바로 화장되려하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기억을 소생시켜주기 위한 기록이다. 황영치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고발의 문학인데 조금도 자못 강요하는 듯한 곳이 없다. 황영치 자신이 피해자의식의 늪에 빠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황영치문학의 저변에는 자기에 대한 '외경'이 있다. 인간인 이상 아무리 싫은 것도 할 것이며 어떤 수치도 잊어버릴 것이다라는 자계가 있다. 재일의 불우를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서 살고있는 '특권성' '지구적인 불평등과 억압 체계'의 수익자로서의 위치, 가해자로서 자기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로서의 자기를 부끄러워하는 정신이 저변에 있기 때문에 그 고발도 두드러지게 강인한 것이다.

  따라서 표제작 '기억의 화장'도 재일조선인의 고생담으로 되어있지 않다. 주인공은 재일1세의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아버지의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 아버지의 생애는 재일조선인으로서는 좋은 편이었을 것이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 행복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사회는 '재일' 1세 조선인의 기억 화장을 계속하여 그 존재를 죽은 자로 만들려 하고 있다. 작자의 부친과 같은 무명의 재일조선인들은 사는 것으로만  차별과 모멸의 일본사회에 저항해온 것이다. 그들의 삶을 계속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버지의 기록은 이 재일의 가족의 기억 바로 그것이며 개별적으로 다양하면서도 보편적인 '재일'의 역사의 우수한 문학적 표출인 것이다.

  '기억의 화장'은 작품 중 유일의 소설이며 이외 다른 게재 작품은 읽기에 따라서 그 긴 해설이며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그의 문학관이 있고 진지한 인생관이 보인다.

  아무쪼록 앞으로 문학활동의 중심에 소설을 놓아주기를 바란다. 문학적 논객은 우수한 작가로서 활동해야만 그 칼날을 예리하게 벼릴 수 있을 것이다.

       (하야시 고지 문예평론가) 

 


[HOME] [MENU] [지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