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1009호 (03.06.21)


<민족시평>

상궤를 벗어난 일본의 대북적대정책

일본 정부와 언론,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일본 국민의 적의에 찬 대북 여론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지금 전시를 방불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다. '북의 위협'을 빌미로 하여 전쟁대비법인 유사법제 관련 3법안이 압도적 다수로 국회를 통과하는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사실상 '적국'으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여객·화물선에 대한 상궤를 벗어난 입항규제가 공공연히 실시되고 있다.

과거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벌인 이래, 일본 정부가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이토록 노골적인 적대정책을 채택한 바가 없었다. 냉전 시기 미수교 상태였던 중국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광기 어린 대처는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선박에 대해서는 별다른 검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유독 이북에 대해서만 의도적으로 규제를 강화시킨 것은 대북 전쟁을 전제로 한 제재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

북의 위협을 빌미로 진행되어 온 일본의 재무장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여 미군의 점령통치를 받던 일본은 6·25 전쟁을 계기로 다시 군비를 갖출 호기를 맞게 되었다. 그때 경찰예비대로 발족한 일본 자위대는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북의 위협'을 구실로 하여 미국의 패권적 세계전략에 편입되면서 전쟁을 위한 법제도 확립과 아시아 최강의 무력을 정비하기 위해 매진해 왔다. 그리하여 90년대 들어 일본은 북의 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미일 신가이드라인에 따른 주변사태법을 통과시켰고, 지난해부터 불거진 '북핵 문제'를 악용하여 이제는 유사법제까지 도입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유사법제 관련법에서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도 자위대가 출동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올해 들어 이시바 방위청장관이 국회에서 밝힌 '북의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이 결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전을 대비한 일본정부의 공식 입장표명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또한 일본은 미국 부시 정권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위망계획에 적극 가담하여 올해 3월에 두대의 정찰위성을 발사하는 등 북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전력강화에 여념이 없다.

유사법제 통과와 관련하여 우려되는 것은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보호법안의 제정을 뒤로 미루는 등 시민의 인권과 재산권 보장을 소홀히 한 조치임에도 국회에서는 일부 정당을 제외하고 여야 합의로 단시일 내에 처리되었으며 언론 또한 평화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는 제대로 보도조차 않은 채 반북 여론을 선동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심한 실정이다.

작년 가을의 각종 여론 조사에서 유사법제 반대 여론이 과반수를 차지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소위 납치 소동을 계기로 반북 적대 여론을 고취시켜 전쟁국가로 가는 법적 통제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 일본정부와 극우 세력들의 음흉한 기도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유사법제 통과로 2차대전 이후 일본이 유지해온 전수방위, 집단적 자위권의 부정, 비핵 3원칙 등 평화헌법의 골간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이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선언하고 교전권을 명기하여 천황을 국가원수로 선언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악하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망언의 뿌리는 우리 민족 멸시와 적개심

노무현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터진 아소 다로 자민당 정조회장의 망언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우리 민족에 대한 뿌리 깊은 적의를 반영한 것인 동시에 한국 새 정권의 '미래 지향성'을 시험해 보려는 속셈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민족적 분노를 가중시킨 것은 대통령 방일의 당일이자 유사법안이 통과된 그 날에 개최된 자민당 총무회의에서 정조회장의 망언에 동조하는 발언이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오쿠노 전 법무상은 "창씨개명은 일본인과 같은 처우를 하려는 조치로 강제가 아니었다"고 우기는가 하면 야마나카 전 통상상도 "대만에서는 창씨개명에 아무런 반대도 없었다"는 강변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아소 본인도 망언 자체를 끝내 철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죄 없이는 결코 우리 민족과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조일 국교 정상화도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일본정부와 극우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평양선언도 일본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자세를 먼저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라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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