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989호 (02.11.01)


<해설>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활동을 살펴본다(중)

녹화사업과 삼청교육

정규의 수속을 거쳐 입대한 군인의 군대내 의문사와는 별도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하의 군대에서 민간인에 대한 집단 '살해와 세뇌'사건이 2건 있었다. '삼청교육'과 '녹화사업'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죽음의 순화교육'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 위원장 한상범)는 9월 16일 81년 6월 20일에 육군 제5사단의 삼청교육감호대대에서 경비병들에 맞아 사망한 전정배씨(30살)는 삼청교육대의 폭력에 집단항의하다 살해된 것으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했다.

진상규명위는 또 잔무정리중인 10월 1일, 삼청교육대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에서 "삼청교육은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한 제도이며 이 과정에서 최소한 50명이 사망했음이 확인됐다"고 하고 정부에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의 특별법제정을 요구했다.

삼청교육은 정권의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장이 '사회악 일소의 특별조치'를 지시한 데에 따라 80년 7월말 사회정화분과위가 입안하고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삼청 5호계획' 등으로 발표하여 실시했다.

불량배 일소의 명목으로 구속된 사람은 80년 8월 1일부터 다음해 1월까지 6만 755명이며 그중 4만 347명이 25개군부대에 수용되어 4주간의 '순화교육'을 받았다. 구속자 가운데는 1만 5천여명의 미성년자가 있으며 319명의 부녀자도 교육을 받았다.

불법구속과 구금, 강제노역과 훈련, 구타, 살인 등 심각한 인권침해로 국방부의 공식발표만해도 부대내 사망 52명, 후유증에 의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 등 피해자 2678명에 이른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사망자가 1000명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교육수료자 중 7578명은 80년 12월에 제정된 사회보호법에 따라 계속 군대에 수용되었다.

정부는 88년에 피해보상을 전제로 신고를 접수했으나 예산부족을 구실로 실시하지 않았으며 2001년 7월에 '보상약속 위반'의 명목으로 피해자 일부에 대해 1000만원정도의 위자료를 지불했다. 삼청교육의 전모는 전두환과 국방부가 조사를 거부하고있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두환이 집권 전부터 계획

진상규명위는 올 2월 21일, 강제징집에 따른 군복무 중에 육군보안사령부(당시)에 연행되어 83년 5월 4일에 의문사한 이윤성씨(21살)는 군당국이 말하는 자살이 아닌 '녹화사업' 과정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씨의 소지품에서 불온 유인물이 나온 것도 이씨의 사망 후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의 친구는 "프락치를 강요받고 있은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성균관대학 재학중이던 82년 11월에 시위도중에 연행되어 바로 최전방 제5사단에 강제징집되었다. 군당국은 "이씨는 월북혐의로 조사를 받았는데 자책의 념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진상규명위는 또한 같은 해 12월 11일에 경계보초 근무 중에 자살했다고 처리된 한희철씨(서울대생 22세)도 '녹화사업'의 과정에서 가혹행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군 당국은 가슴에 총탄 세발를 쏘아 자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녹화사업은 80년대 초 운동권학생을 군대에 강제징집하여 '정훈교육'을 통해 프락치로 만들어 대학에 보내 운동권 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하게 한 것으로 △강제적 사상개조 △'관제' 프락치 강요 △사건관련자의 불법연행과 강제조사 등을 포함한다. 국방부는 88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전두환이 집권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행에는 치안본부, 검찰, 내무부, 문교부 등이 동원되고 있으며 국가총동원 사업임을 증명하고 있다.

81년부터 83년까지 군에 강제징집된 대학생은 1100명으로 이중 265명이 녹화사업의 대상이 되어 프락치의 '특별정훈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6명이 의문사했다.

진상규명위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소환, 동행명령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 또 국군기무사령부는 "대통령이 와도 자료를 보여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양주현 기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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