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989호 (02.11.01)


<민족시평>

북미 협상의 본질을 똑바로 봐야 한다

-누가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으며 어느 쪽이 핵위협을 가하는가-

10월 3일부터 5일까지 미 국무차관보 켈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부시 정권 들어 북미간의 고위급 협상이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때는 마침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공사가 시작되는 등 남북관계가 지속적인 진전을 보이고 북일관계 또한 수뇌회담을 계기로 정상화를 위한 새 국면이 마련된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방북은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보장을 바라는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특사라는 켈리 차관보는 진지한 회담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미국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강요와 압박을 가하기 위해 방북한 것 같다. 10월 16일, 미국 정부는 북미간의 대화내용을 일부 공개하면서 "북이 핵개발 계획의 존재를 시인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으니 북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북 공세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과연 미국 정부의 주장이 사실인지 우리는 북미 협상의 내용과 그간의 북미관계 추이를 냉철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제네바 합의 위반자는 바로 미국

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체결된 조미 기본합의문은 네 가지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문제의 근본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쌍방의 이행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북이 흑연감수로와 그 연관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2003년까지 2기의 경수로발전소를 제공한다(제1조) , 쌍방은 정치 및 경제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한다(제2조),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도 않는다는 공식 담보를 북에 제공한다(제3조), 경수로 핵심부품의 납입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북은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는다(제4조)는 것이다. 이는 결코 어느 일방만의 이행을 의무화한 불평등 조약이 아니라 북미 두 나라가 대등한 입장에서 동시에 이행해야할 쌍무 협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북미관계 추이를 돌이켜 보면 합의내용을 이행한 것이 북이며 시종일관 이를 위반해 온 것이 미국이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미국의 의도적인 태만으로 경수로 공사는 대폭 지연되고 있으며 언제 완공될지 알 수도 없는 형편이다. 또한 지난 8년동안 대북 적대시정책과 경제제재를 지속해 온 미국은 이제 와서는 북을 '악의 축'으로 매도하여 선제 핵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경수로 공사를 지연시킨 책임을 지기는커녕 문서에도 없는 조기 사찰을 들고 나와 마치 북이 이행의무를 어기고 있는 것처럼 국제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선제핵공격을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닌가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건국이래 미국이 저질러 온 추악한 영토 확장의 침략사를 보게 되면 우리는 그 비열함과 잔인무도성에 치를 떠는데 '핵확산 방지와 세계평화'를 팔아가며 북을 무장해제시키려는 역대 미국 정부의 압살정책이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부시 정권이 벌이는 지금의 핵소동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해의 흐름을 가로막고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여 냉전시기의 대결구조를 유지하려는 계획적인 기만 술책에 다름이 아니다.

문제 해결의 방도는 무 엇인가

북의 현 체제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 타도를 목표로 삼아 선제 핵공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미국 대통령이 여러 차례 공언했다면 이는 사실상의 대북 선전포고나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의 가중되는 핵 압살 위협에 대처하고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북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 강력한 것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정당방위 개념을 인용할 것도 없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여겨진다. 북의 외무성 대변인은 10월 25일, 담화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일방적인 보도내용을 시정하고 북미간의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했다. 북은 방북한 켈리 차관보에게 "부당한 군사적 압력책동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북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확약하는 동시에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의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한다. 또한 북은 이날 담화를 통해 거듭 북미 불가침조약의 체결을 제안했으며 미국이 핵 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표명하였다.

북이 추구하는 것은 전쟁도 핵개발도 아니며 공정한 대미협상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고 경제를 재건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북은 이번 외무성 담화에서 "모든 문제 해결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의 위협 제거이다. 이를 충족시키는데는 협상의 방법도 있고 억제력의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국 정부는 이 대목을 허심탄회하게 읽어야 할 것이다.

(한라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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