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956호 (01.10.01)


<해설>

정부의 쌀정책 변경과 농민투쟁

혹심한 가뭄을 이겨내고 한국은 지금 풍년이다. 그런데 가을 수확을 앞두고 농민들의 표정은 어둡고 고뇌와 분노는 깊어만 가고 있다. 재고 쌀이 넘쳐 가격 폭락이 예상되어 농민이 불안해하고 있는 터에 정부가 쌀 증산정책을 포기하고 수매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농림부는 9월 4일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쌀 재협상에 대비한 쌀산업중장기대책'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증산정책을 포기하고 다수확 품종에서 고품질종으로의 전환을 촉진하여 쌀 정부 수매가를 동결한다. 그리고 2004년 이후는 보조금에 의해 정부가격으로 일부를 수매하는 현행제도 대신에 시가로 사들여 방출하는 공공비축제를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농업정책, 특히 주곡정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서 큰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쌀값 안정 대책은 양곡정책 실패로 생긴 모든 피해를 농민에게 떠 넘기는 것"이며 "WTO 쌀 재협상에 대비한다는 미명 아래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과 통일이 가시화하고 있는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대책"이라고 비난했다. 전농은 또 전국 19개 시, 군 농민회별로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을 저지하고 쌀생산비보장을 요구한다'는 천막농성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년말 쌀 재고량은 적정 재고량(550만섬)의 두 배에 가까운 1천만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96년에는 168만섬에 지나지 않았던 재고량이 이만큼 급증한 이유는 최근 5년간 풍작의 연속으로 매년 생산량이 소비량을 웃돈 데다 우루과이 라운드(UR) 농산물협정에 의한 외국쌀 의무수입량인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올해의 MMA는 전체 소비량의 2·5%인 12만 8000톤, 89만섬에 달하며 지금까지 48만 8000톤이 수입되었다.

또 쌀 과잉공급의 원인으로서 소비가 줄어진 측면도 있으나 농산물시장 수입개방의 영향이 크다. 쌀 이외의 대부분의 농작물이 전면 개방되어 가격이 폭락해 비교적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었던 쌀 농사에 농민이 집중했고 정부도 쌀 증산을 장려했다. 소비가 떨어진데도 불구하고 97년 이후 쌀 재배면적은 불어나고 있는 상태다. 지금은 쌀 소득이 농가소득의 24%나 되며 우리나라의 농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그동안의 정부 수매량 감소와 가격하락으로 인해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었다.

농촌은 이미 사실상 파산상태에 놓여있다. 한국농업경영자중앙연합회(한농련)정책연구실에 의하면 1991년의 농가부채 419만 2000원이 99년에는 1953만 5000원으로 357%나 급증했으며 농가소득과 부채 비율도 91년의 39·6%에서 98년에는 83%로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정부방침은 농민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연일 각지에서 항의행동이 전개되고 있다.

민중연대가 주최한 제3차 민중대회가 9월 15일 서울 등 각지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대회에서 인사한 정광훈 전농의장은 "김대중 정부는 미국을 위시로 한 다국적농업기업의 세계화, 개방화농업지배전략의 일환으로 연간 2조원 가량의 농가피해가 예상되는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체결을 강행하고 있으며 2004년의 WTO재협상을 앞두고 쌀 개방을 기성사실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개방농정을 철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이날 전주에서는 전농전북도연맹의 1만여명의 농민들이 결집하여 집회후 도청을 향해 시위행진했다. 강원이나 광주, 창원에서도 수천명의 농민들이 경찰대와 충돌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펼쳤다. 농민들은 쌀 생산비 보장, 쌀 재고량 해소를 위해 대북지원 조기실시, 수입쌀 관리대책 수립, 쌀생산삭감계획 즉각 철회 등을 요구했다.

17일에는 대전 충남도청 앞에서 1000여명의 농민들이 쌀 가격보장 등을 요구하여 시위를 했으며 부지사로부터 쌀대책협의기구 구성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20일 충남 아산시에서 열린 '쌀값 보장 등을 요구하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표자회의 투쟁선포식'에서는 한농련회원 농민들이 가지고 온 쌀가마를 쌓아놓고 불을 질러 기세를 올리는 등 농민들의 분노는 충천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김기봉 기자)

<민족시보 www.korea-ht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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