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921호 (00.8.1)


<초점>

생이별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실현

남북정상회담 후 통일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생이별한 가족과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이 반세기만의 상봉을 앞두고 잠을 설치고 있다. 이산가족 교환방문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보름만인 6월 30일의 적십자회담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남북은 ▽이산가족 100명씩을 8월 15일부터 3박4일 동안 서울과 평양을 동시 상호방문케 하고 ▽비전향장기수를 9월초 송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비전향장기수 희망자 전원을 북에 송환한 후, 즉시 적십자회담을 열고 이산가족이 상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한 이산가족면회소설치문제를 협의, 확정하기로 했다.

남북은 지난달 16일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200명의 명단을 교환했다. 남쪽에서는 북쪽에서 넘겨받은 명단을 즉시 언론에 공개, 생사와 주소확인에 들어갔다. 그 결과 생사·주소가 확인된 북쪽 서울 방문 후보자의 남쪽 가족 192명이 불과 사흘만에 확인되었다고 한다. 남북은 후보자 중 100명씩 선정하여 서울과 평양을 방문, 가족과 상봉한 후 18일 귀환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이산가족이라는 사실조차 숨겨온 사람들이 많았음을 생각 할 때 정상회담이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헤어진 아들이 죽은 줄 알고 매년 제사를 지내온 노모. 유복자를 키우며 50년동안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내. 신혼부부때 갈라진 아내를 찾는 남편. 부모와 형제가, 남편과 아내, 자식들이 그렇게 가슴에 묻은 아픔을 삭히면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왔다. 더구나 월북자 가족들은 연좌제와 관련하여 사회의 냉대와 당국의 끈질긴 감시에 시달리는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71년 남북적십자회담으로 시작됐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그후 85년 남북 각각 50명의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하여 75명이 92명의 가족과 친척 상봉을 했으나 그후 중단된 상태였다. 91, 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서 생사와 주소확인, 자유왕래와 서신거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 등 5개항에 합의했으나 여태껏 실천되지 못하고 합의사항으로만 남아 있었다.

이번에 만남이 실현될 남북 200명의 가족은 1천만 이산가족을 생각하면 턱없이 미흡한 숫자다. 피붙이와의 만남과 고향을 애타게 그리다 고령으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난 1세대들, 살아 생전에 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 이상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또한 박정희 정권때부터 민주화 통일운동을 연유로 조국자유왕래의 길이 막힌 해외인사들의 현대판 이산가족문제 해결도 시급하다.

<민족시보 www.korea-ht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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