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70호 (98.12.11)


기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박해의 근원

요시다 야수히코(사이타마대 교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조선)의 소위 '대포동 발사' 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과잉반응한 것은 일본뿐이었다. 미국도 한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냉정했다. 나는 발사하기 전에 사전통고를 하지 않았다고 북조선을 비판했으나 만약 사전통고가 있었다 해도 적대반응은 변함없었을 것이며 제재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사실 사전통고는 정찰위성으로 유일하게 발사준비상황을 포착하고 있던 미군사령부에 의해 10여일 전에 알려져 신문기사로 보도되었으므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는 아니었던 것이다.

과잉반응의 실태는 적시감정의 폭발에 다름 아니다. 왜 북조선을 적시하는가.

북조선은 일본에 대해 일제36년의 식민지지배를 사죄하고 한반도를 해방한 항일빨치산의 정통정권인 '공화국'을 전승국으로 인정하고 패전국으로서의 배상을 지불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식민지지배하에서의 강제연행 300만 명, 종군'위안부' 20만 명에 대한 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한일국교정상화가 미소냉전하에서의 반공진영의 동맹국으로서 정치결착을 서둘러 '과거청산'이 애매하게 된 만큼 극히 정당한 요구이다.

그러나 보수정권하의 일본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다. 네오 내셔날리즘 대두의 국내여론을 보더라도 그런 '부당한' 요구를 하는 나라는 하루빨리 없어져 버리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미양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김정일 정권 붕괴설에 일본의 메디아가 달라붙어 주간지와 월간지를 장식하는 것은 그러한 바람과 희망적 관측의 증거이다. 그런 나라가 일본열도의 머리위로 '미사일을 날렸다' 면 닥치는 데로 보복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일본민족의 근저에 남아 있는 뿌리깊은 조선민족 멸시이다.

막말에서 명치에 걸쳐 탈아입구를 표방하며 부국강병을 향해 근린의 아시아 여러 민족을 열등민족으로부터 문명개화시켰다고 오만하게도 자부한 제국주의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했으며 그 동안 일본국민은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남용했다. 전후 일본은 미군주도로 민주화되었으나 조선민족에 대한 인권회복과 보상은 불철저한 채이다. 인권교육도 불충분하다. 그 결과 뿌리깊은 멸시감정이 남아 있으며 이것은 특히 민족적 동질성을 고수하며 민족교육을 중요시하는 재일조선인에 대해 향하고 있다. 방화·폭행·폭언·괴롭힘 따위는 그 뚜렷한 표시이다.

대다수의 일본인이 한반도를 아직도 정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진보파·리버럴파 인테리는 오랫동안 북조선을 미화·이상화하고 군사독재정권하의 한국을 비판하고 한국인을 멸시해 왔다. 지금 그 풍조는 역전하여 보수파의 목소리만 크게 울려 퍼진다. 그들은 한국의 민주화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환영하며 일한새시대를 구가하며 그 대신에 북조선을 적시하고 납치의혹을 선전하며 보복을 외친다.

'대포동 발사'는 이 감정의 폭주를 촉발한 안성맞춤의 사건이었다. 이것은 동시에 과거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강박관념의 징표라고도 생각된다.

남북은 같은 민족이며 분단 비극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그 불행에 동정하고 구 종주국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여 조일국교정상화와 남북통일 촉진에 겸허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일본민족이 강박관념에서 해방되고 근린의 여러 민족과 공생하는 유일한 선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를 기초로 하여 역사인식, 과거의 청산, 전후보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의 문제는 금세기 중에 해결을' 이라는 것이 오부치 수상의 구호인데 현안은 북방영토문제뿐만 아니다. 조일국교정상화를 잊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금세기 중에 국교정상화교섭의 재개로 가져갔으면 한다. 조일간의 교류와 신뢰조성 없이는 북조선의 '위협'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조국교정상화촉진 국민포럼 간사, '북조선인도지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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