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822호(97.6.11)

주장

가이드라인 개정을 반대한다

한반도 등 일본 주변지역의 긴급사태(周邊有事=주변유사)가 발생하면 자위대가 공해상에서 기뢰제거 등을 할 수 있다는 '미·일 방위협력 지침(가이드라인)의 개정을 위한 중간보고서'가 8일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의 핵심적인 문제는 일본 자위대가 더욱 호전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동안 주한미군을 후방에서 지원하였던 자위대가 이제 한반도 주변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 평화헌법 제9조의 파기를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 자위대는 화약 냄새가 나는 한반도의 정세에 개입할 기회만 노리고 있으며, 가이드라인 개정은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다시 상륙하기 위한 예행연습일 뿐이다.

가이드라인의 많은 문제점 중에서 우선 자위대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암적 존재임을 지적한다. 북한의 연착륙을 표방하는 미국은 북한군을 단기간에 섬멸하는 '군사적 흡수통일'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미국 군대의 예비사단으로서 자위대가 한반도의 공해에서 사실상의 전투행위(정보제공·급유·군수품 수송·경계·기뢰 제거·북한 난민 구출·수색·남북한 체류 일본인의 비행기 수송·선박 검문)를 한다면, 자위대야말로 반평화·반통일·반민족 군단이다. 기뢰 제거·난민 수송 과정에서 자위대가 중국·러시아 군대와 충돌하여 '제2의 청일전쟁·노일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이드라인 개정 논란이 '현대판 征韓論(정한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120년 전 조선 말기의 혼란을 틈탄 일본이 운양호를 보내 한반도 침략의 신호탄을 쏘았듯이 20세기 말의 어지러운 한반도 주변정세를 비집고 자위대를 파병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 일제 36년 지배에 대한 사과조차 인색한 일본이 난데없이 북한 붕괴­난민 대량 발생에 대처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20년 전 실종된 중학생을 핑계삼아 쌀 지원을 거부하는 일본. '북한 미사일의 도쿄 공습' 소동을 벌이며 군비확장을 꾀하는 일본. 북한 난민 때문에 일어날 민단계·조총련계 동포의 분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자위대를 출동하거나 (재일동포 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有事立法(유사입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본.

북한 위협론을 내걸고 치켜든 '가이드라인 개정'이라는 칼을 버리라고 일본에 강력히 요구한다. 아울러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하여 한반도의 지배권을 노나 먹으려는 미국·일본 정부에 엄중한 경고를 하며, 이러한 반민족적인 기류에 쐐기를 박지 못하는 한국정부의 용렬함을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