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보고>

안기부법·노동법 개악 철회! 한보비리 철저 규명!

재일한국인중앙대회

1997.2.23 도쿄

기조보고


1. 민주노총의 투쟁에 지원 연대하며 날치기 악법을 철회시키고 노동법 재개정을 쟁취하자

민주노총은 총파업투쟁을 기폭제로 한 '최후의 결전'에 돌입한다. 민주노총은 3단계에 걸친 전국규모의 총파업으로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고 국민의 광범한 지지와 국제적인 지지 연대 여론을 환기시켜 김영삼 정권을 궁지에 빠지게 했다.

지난해 12월26일의 날치기 악법 통과 직후 즉시 조직적 총파업에 돌입하여 연초부터의 제2단계 총파업에서는 한국노총과 연대하면서 1월15일에는 한국사상 최대 규모인 전국에서 75만명이 참가한 총파업을 전개했다. 26일에는 한국노총과 공동으로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무효화와 민주적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각지에서 30만명이 결집하는 등 투쟁은 날로 확대했다. 1월23일에 '한보' 비리사건이 드러나자 노동자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노동자 임금인상이나 노동운동이 경제를 침체시킨 주요인이다"고 강변해 온 정부·재벌이야말로 정경 유착으로 국가경제를 이용물로 해 온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2월1일 전국 11개소에서 '부정 재벌·부패 정권 규탄과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무효화 범국민결의대회'를 열고 한보사태와 결부시켜 범국민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일련의 투쟁으로 민주노총 합법화를 저지하고 조직와해를 노린 김영삼 정권과 재벌의 의도는 완전히 파탄되고 거꾸로 민주노총의 거대한 위력을 내외에 과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합법화 저지에 실패한 김영삼 정권과 재벌은 민주노총을 내부에서 와해시키기 위해 파업기간 중의 임금미불, 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조합간부에 대한 징계처분 등 대대적인 탄압 공세에 나서고 있다.

제3단계 파업 이후 권영길 위원장 등 지도부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조직의 결속을 다지고 투쟁태세를 정비해 온 민주노총은 2월13일에 대의원대회를 열었다. 대회에서는 한보사태와 임시국회 소집(17일)이라는 정세의 변화를 감안하여 18일부터의 제4단계 파업 돌입 예정을 연기하고 국회심의의 향방을 지켜보면서 24일부터 28일 사이에 돌입한다는 투쟁전술을 세웠다.

그러나 '황장엽 망명신청사건'으로 김영삼 정권의 공안정국이 강화되려는 현재, 총파업을 둘러싼 한국 국내상황은 무척 긴박하다.

또 안기부법 개악은 대통령선거를 향한 탄압태세의 정비로 간주하고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야당도 이 '망명신청사건'에 따른 정부·여당의 '안기부 강화' 공세 속에서 안기부법 개악 철회 요구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등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들 '재일한국인대책위원회'는 지금까지 긴급행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여 민주노총이나 '범국민대책위원회'의 투쟁과 연대하면서 한국민중의 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따라 일본국내에서 수많은 노동조합·민주단체가 김영삼 정권에 대한 항의와 민주노총에 대한 격려행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을 더욱 강화하여 민주노총의 투쟁을 고무 격려하고 해외민주단체와 연계하여 국제여론을 환기하며 국내외 동포와 세계의 양심의 힘으로 안기부법·노동법 개악 철회와 노동법 재개정을 쟁취하자.

2. 한보비리사건을 철저히 규명하고 김영삼 대통령 등 부정사건 관련자는 사죄하고 공직에서 물러나라

한국 14위의 '한보' 재벌의 중핵기업인 한보철강공업이 1월23일에 부도를 내고 5조원의 부채를 안고 도산했다. 이 도산으로 정태수 한보 총회장이 89년부터 제철소 건설비 명목으로 융자를 받은 5조원 중 일부를 유용하여 제철소 규모와 투자액을 조작하고 거액의 비밀자금을 염출, 특혜융자의 대가로 여야당 정치가와 은행장에 뇌물을 뿌린 사실이 발각되었다.

김영삼 정권의 부패상을 드러낸 이 사상 최대의 부정사건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2월12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각계 원로가 기자회견을 갖고 현상황을 '국난'이라 규정하고 "구조적 부정부패와 정경 유착의 표본인 한보사태는 현정부의 독선적 정치형태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함께 국민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고 김영삼 정권을 격렬히 비난하고 한보사태를 철저히 규명하고 안기부법·노동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부실기업에 거액의 융자가 가능한 것은 권력의 중추밖에 없다는 것과 그 진상이 어디까지 밝혀질 것인가에 있었다. 그런데 2월19일 한보부정융자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은 사건을 축소 은폐한 채 건국이래 최대 부정사건의 막을 내렸다.

수사의 핵심은 "누가 뇌물을 받았는가"가 아니라 "거액의 부정융자를 가능케 한 '실세'는 누구인가"를 철저하게 규명하는데 있었을 터였다. '실세'란 대통령과 직결된 사람이며 국민은 그것을 김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로 보고 있다.

부정부패를 근절시킨다고 호언장담하던 김영삼 대통령과 정부의 국민에 대한 공약에도 불구하고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은 근절은커녕, 권력의 비호 아래 오히려 날로 거대화, 악질화하고 있다. 이번 발각된 한보사건은 그 규모가 사상최대의 초대형인 만큼,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며 관련된 배후의 범위가 권력의 중추를 비롯하여 여야당의 실력자들이 직접 관여하고 있는 점에서도 국민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 여야당의 한보사태에 대한 대응은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혀 부정사건을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보다는 이 사건을 대통령선거를 향한 당리당략에 이용하여 표면적으로는 '철저한 규명'을 외치면서도 뒤에서는 사건의 축소·은폐에 서로 협력하고 있다.

이번 한보사건은 한 기업가의 부도덕한 산업윤리관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 정경 유착의 구조와 반민족적·반민주적 정치세력의 체질이 그 근원이다. 따라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있는 정경 유착구조의 청산과 부패 타락한 정치세력을 일소하지 않는 한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 없다.

나라의 주인은 민중이며 정치의 주체도 민중이다. 민중을 중심으로 한 모든 민족민주세력은 대단결하여 불법 날치기 통과한 안기부법·노동법을 철회시키고 노동자 등 국민의 생존권이 지켜지는 민주화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보비리사건을 철저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여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민족의 자주와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또 다시 전국민적으로 전개하자.

3. 김영삼 정권의 기사회생책-안기부가 깊이 관여한 '황장엽 망명신청사건'

북한의 노동당 간부인 황장엽 서기 '망명신청사건'은 사건의 전모가 아직도 불투명하여 국제관계도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이번 '망명신청사건'에 안기부가 깊숙히 관여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김영삼 정권이 이 사건을 일찌감치 예상하고 정권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기사회생책으로 최대한 이용하려 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2월12일 한국정부는 "황 서기가 베이징 주재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의 김덕홍 부실장과 함께 망명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이틀날인 13일자 <조선일보>는 "황 서기가 한국인 사업가에게 보낸 1월12일자 자필 편지"를 독점 입수했다 하며 편지 사진과 함께 그 내용을 보도했다. 14일에는 지난해 11월에 썼다는 3통의 편지를 다시 공표했다.

<조선일보>는 안기부 정보를 독점 입수하여 안기부의 지시에 따라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안기부가 김덕홍을 공작하여 포섭하고 김덕홍을 시켜 황 서기의 망명을 '성공'시켰다.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김영삼 정권은 실로 '절묘한 타이밍'을 노려 사건을 중국의 양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 즉시 <조선일보>가 '황 서기 편지'를 공표한 것이 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7일 태도를 달리하여 '망명'의 가능성과 그것을 용인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의 배경으로서 남북한과 중국과의 협상이 베이징을 무대로 진전되는 한편, 13일부터 뉴욕에서 북한과 미국의 실무자회담이 재개되고 있어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한과 중국, 미국 사이에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정부는 한국정부가 중국정부의 양해 없이 일방적으로 사건을 공표하고 '망명신청사건'을 북한 공격에 정치이용하고 있는 것이 사건의 해결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고하여 불쾌감을 표명해 왔다. 최근에 와서 각종 보도는 한국이 김 대통령의 친서를 중국의 강택민 주석 앞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며 앞으로 중국 국내에서(망명 따위의) 공작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확약함으로써 중국이 황 서기가 한국으로 출국하는 것을 인정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황 서기 망명신청사건'을 둘러싸고 한 때 남북간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졌으나 이 사건을 한국정부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약함으로써 "개인적 사정에 의한 망명신청을 국제 관례에 따라 처리한다"는 방향에서 사건이 '결착'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초점은 한국정부의 '확약'이 어떻게 보증되는가에 있으며 그것이 황 서기의 출국지와 그 시기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4. 남북의 긴장격화와 공안정국의 강화에 혈안이 되고 있는 김영삼 정권

안기부법·노동법의 날치기 개악에 대한 대규모 총파업과 한보비리사건으로 궁지에 빠져 있는 김영삼 정권은 절묘의 타이밍으로 일어난 '황 서기 망명신청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민의 대북 경계심을 부채질하며 긴장을 높여 '대북안보정국'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김영삼 정권의 의도는 <조선일보>가 독점하여 보도한 '황 서기의 수기'나 '발언' 내용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남북의 차이를 하늘과 땅 만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의 경제를 일본 수준으로 높이려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하는데 지난해 8월에는 학생들의 대규모 소동이 있었고 이번에는 노동조합이 대규모 파업을 하여 경제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안기부 강화" "강력한 여당을 만드는 것이 필요"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개정하여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는 등 안기부의 뜻을 노골적으로 반영한 '편지'나 "남에는 5만명의 간첩이 있으며 권력 중추에도 있다"는 '발언'등에서 안기부를 강화하여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움직임을 '간첩'으로 간주하고 탄압, 대통령선거를 향해 권력지반을 다지고 안정적 정권계승과 그의 퇴임 후의 '안전보장'을 실현하려는 김영삼 정권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2월15일 밤 서울 교외에서 이한영 씨가 총격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정부는 다음날 긴급치안안보각료회의를 열고 '황 서기 망명문제'에 대한 북한의 보복이라고 단정하고 전국의 경찰에 비상경계를 폈다. 김영삼 대통령도 17일 재외공관장회의의 식사회에서 이 사건에 언급, "북한 간첩의 범행으로 추정되는 망명자에 대한 테러사건이 잔혹하게 일어났다"고 말하고 북한에 의한 범행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러나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북한공작원 범행설의 근거가 무너지고 있다. 이 씨가 러시아인과의 무역에서 개인적 트러블에 말려들어 총격 당했을 가능성이 새로이 부상, 수사를 다시 학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 사건의 전말에서도 김영삼 정권이 '황장엽 사건'을 북한 공격에 정치이용하며 얼마나 대북 긴장격화책동에 혈안이 되어 있는가 알 수 있다.

5. 북한의 조기붕괴를 기대할 김영삼 정권의 '돌출행동'의 파탄

한편 여당의 이홍구 대표는 14일 "황 서기의 망명을 계기로 북한을 연착륙으로 유도한다는 정부의 현재의 대북정책에서 탈피하여 북한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는 방향에서 통일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북의 무력도발에 대한 경계태세 강화를 호소했다.

"북한을 연착륙으로 유도한다"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며 이에 일관하게 반대하여 "북의 급격한 변화=북의 붕괴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해 온 것은 김영삼 정권이다. 그것이 마닐라에서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수정 요구를 받고 마지못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지원을 재개했던 것이다.

북미연락사무소의 상호개설, 3주기 후의 새로운 북한지도체제의 등장을 앞두고 대북강경정책이 완전히 파탄하여 국내외에서 궁지에 빠진 정권붕괴의 위기에 있는 김영삼 정권이 남북관계를 긴장시켜 북미관계진전에 제동을 걸고 국내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망명사건'을 최대한 정치이용하려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긴장을 바라지 않는 중국과 미국으로서는 김영삼 정권의 '돌출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억눌려 당초의 의도가 파탄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김영삼 정권의 '돌출행동'을 비판하는 미국정부의 반응이 보도의 형태로 표명되고 있다. 17일 <워싱톤 포스트>지는 "새로운 긴장으로 한반도의 대화가 위태롭게 된다"는 제목으로 1면에 '황장엽 망명신청사건'에 관한 분석기사를 게재, 미국정부관리는 "최근의 한반도 정세가 긴장되고 있는 것은 김영삼 대통령 등 한국정부측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는 지난해 9월의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한국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잠수함에 탄 북한 특수부대원의 인원수를 늘이고 그들의 임무의 중요성도 과장하도록 결정했다"고 미국관리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톤 포스트>지는 또 "한국정부가 잠수함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사건을 과장함으로써 이익을 보았다"라는 다른 관리의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잠수함사건'에 이따른 '망명신청사건'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사태의 책임은 오히려 김영삼 정권에 있다는 지적이 미국측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6. 안기부법·노동법 개악 철회와 노동법의 민주적 개정을 쟁취하고 한보사태의 진상을 철저 규명하여 반민족적 부정부패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고 반통일책동을 분쇄하자

'망명신청사건'을 최대한 정치이용하려는 김영삼 정권의 의도는 국내외의 강한 비판으로 일단 막았다고는 하나 김영삼 정권이 대통령선거를 향해 '황장엽 카드'를 어떻게 쓸 것인지 예측을 불허한다. 사건의 정치이용을 허용치 말며 공안정국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안기부법 개악 철회'는 중요한 과제이다.

17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과제는 안기부법·노동법 개악을 철회하고 노동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고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한보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제는 국회에서의 여야당간의 심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범국민적인 투쟁을 전개하여 국회를 내외의 여론으로 포위하고 민중의 힘으로 김영삼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어야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적 대단결로 새로운 평화보장체제를 구축하여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남북이 함께 공존공영하는 연방제통일의 조기실현을 향한 투쟁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도 국내외의 민족민주세력이 굳게 단결하여 안기부법·노동법의 개악 철회와 노동법의 민주적 개정을 쟁취하고 한보사태의 철저규명을 요구하고 반민족적, 반민주적 부정부패정권을 궁지에 몰아 반통일책동을 분쇄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노총의 투쟁을 비롯하여 민중의 안기부법·노동법 개악 철회투쟁은 지금은 민주정부 수립을 향한 한국민중의 근본적인 희망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무력한 피지배자'에서 '역사적인 주인'으로 당당하게 소생한 한국노동자의 긍지에 찬 투쟁은 그누구도 막을 수 없다.

1997년 2월23일

민족시보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