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1127(07.12.15)


<법정증언 보고>

이시우재판에 증인으로 출정하여

  손형근 한통련부의장

 

  한통련의 전신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에 대한 1978년의 대법원의 '반국가단체' 판시가 박정희 독재정권하에서 일어난 전혀 근거 없는 부당한 판시였음이 명백하게 되었다.

  이시우재판의 개요

  나는 12 6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진작가 이시우 씨의 재판, 13차 공판(서울지법)에 피고측의 증인으로 출정했다. 이씨는 미군기지 반대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하는 훌륭한 평화운동가이다. 그는 NPO법인 삼천리철도(삼천리철도)의 초청으로 6.15공동선언 2주년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2002 6월에 아이치현을 방문했다. 거기서 사진전을 열고 기념강연도 했다. 이씨는 행사를 주최한 도상태 이사장, 강춘근 부이사장(당시 한통련도카이본부 대표)을 비롯해 많은 삼철리철도 회원들과 면담했다.

  이씨의 반기지활동이나 일본에서의 언동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며 한국 공안당국은 올해 5월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당국은 기소이유의 하나로서 이씨가 한통련의 강 부의장과 만난 것이 국가보안법 제8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 통신'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치안당국은 한민통에 대한 30년전의 대법원의 부당한 판시를 최대한 악용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화합을 지향하는 삼천리철도를 '용공좌경단체'로 조작하고 있다.

  7월부터 이시우씨의 1심 공판이 개시되자 최병모 변호사(전 민변회장)를 비롯해 19명으로 구성된 피고인 변호단으로부터 한통련이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당사자인 한통련이 나와서 법정에서 증언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한통련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중앙본부 부의장인 나를 변호측 증인으로서 공판에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반국가단체' 규정은 무효

  그런데 왜 한통련이 '반국가단체'의 판시를 받았는가. 그 경위를 설명해보자. 한민통이 반독재투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출운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1978, 서울에 유학 중이었던 재일한국인 김정사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김정사 사건). 판결문에는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라는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도 않고 김정사씨가 '반국가단체인 한민통의 지시를 받았다'는 문언이 삽입되어있었다(대법원 부당 판시).다만 나중에 김정사 사건의 공판에 윤효동이라는 인물이 나와서 자기는 전 간첩이었다는 것과 1970 4월에 곽동의씨(현재 한통련 상임고문)를 북한에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다고 증언(윤효동 증언)한 것을 알았다. 윤효동 증언은 사실과는 전혀 달라 그 허위를 법정에서 밝혀야 했으나 박 독재정권의 파쇼정치가 날뛰던 당시의 상황에서 윤효동 증언에 대한 심리는 전혀 실시되지 않았고 또 한민통측이 반증을 위해 방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윤효동은 1980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재판(군사법정)의 공판에도 출정하여 김정사 사건의 공판증언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재판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민통의 의장, '반국가단체의 수괴'라고 하여 사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때도 전두환 군사정권하였던만큼 한통련에 윤효동 증언의 허위에 대한 반증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한민통을 비롯해 국제적인 구출운동의 힘으로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의 위기에서 벗어나 그 후 복권하여 1998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1989년에 한민통을 개편하여 결성된 한통련은 2003년까지 여전히 '반국가단체'로서 한국 자유왕래조차 허용되지 않는 억울한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통련에 대한 대법원 '반국가단체' 판시는 근거 없는 조작이다. 그것은 해외동포운동의 중심인 한통련에 대한 독재와 분단세력의 부당한 정치공격이며 한통련의 활동을 위축시켜 한통련과 국내 자주 민주 통일세력의 연계를 차단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또 군사독재정권이 김 전 대통령을 말살하기 위해 이용했다. 군사정권 퇴진과 함께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진전되고 통일을 향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규정은 완전히 무효이다.

  2003 9월의 해외민주인사고국방문단으로서 한국방문이 실현된후 조국을 무조건 자유왕래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명예를 회복한 한통련은 대법원 부당 판시 취소, 무효화를 위해 줄기차게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번 이시우재판 출정도 그중의 하나이다.

  공판에서 증언

  이번 공판에서 나는 한시간 반에 걸쳐 한통련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윤효동 증언의 허위를 실증하기 위해 곽동의 상임고문의 알리바이(1970 4월에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를 증명하는 4가지 구체적 증거(1면 머리기사 참조)를 제시했다. 또 삼천리철도가 '용공좌경단체'가 아닌 한반도평화를 지향하는 민족화합 단체임을 구체적 사실로 증명했다.

  이어 나의 증언에 대한 검사측의 심문이 있었다. 그런데 검사측은 구체적 증거에 따른 나의 증언에 전혀 반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상투수단으로 써 온 냉전시대의 반공이데올로기 공격을 하려 했다. 이 허구에 찬 검사측 심문에 변호단이 강력히 항의했고 재판장의 명령으로 검사측 발언은 중지되었다. 결국 검사측은 나의 모든 증언에 전혀 반론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재판장으로부터 발언을 요청 받은 나는 부당한 '반국가단체' 판시로 한통련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가를 호소하고 재일동포사회의 화합을 위해서도 이번 재판에서 한통련에 대한 부당한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고 증언을 마쳤다.

  승리의 공판

  이번 나는 재판 출정을 통해 한통련이 처음으로 국가의 공식(사법)기관에서 공개적으로 스스로 결백을 주장했다. 이것은 무척 의의가 크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하고 실시된 공판에서 나의 증언에 대해 검사측이 일언반구의 반론을 하지 못했다는데서 볼 수 있듯이 이번 공판에 한통련은 완전 승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이시우씨에 대한 강력한 원호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대법원의 부당 판시를 취소, 무효로 하기 위한 운동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데서 큰 담보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내년 초에 이시우씨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린다. 판결에서 이시우씨가 무죄를 쟁취하고 한통련이 반드시 정당한 평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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