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보 제1125(07.11.15)


<독서안내>

 원폭시 181인집 

  발행 콜삭사 2천엔

 

  요컨대 시인이 아니면 여간 애호가가 아닌 이상 이 나라 일본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 더구나 낭송한다는 것 등은 '비일상적'이지만 약 2주일동안 나는 '원폭시 181인집'에 빠져있었다. 그것은 여름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입동이 지난 지금도 가끔 임의의 페이지를 펼치고 시를 읽고 그리고 생각한다.

  시는 그 예술 형식에서 시인의 사상이 생생하고도 아프게, 위대함도 어리석음도 모두 그것은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시집 모두에서 도오게 산기치, 구리하라 사다코, 하라 타미키로 계속되는 최초기의 원폭시군은 절대악으로의 원폭에 대한 분노, 사자와 상처 입은 자들에 대한 기도와 절망에서의 재생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어 처절하고도 아름답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후에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 사상이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말이다. 발표 연대순으로 엮은 시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이 뛰어난 시문 선집이라도 '풍화'하고 통속화하는 사상이 엿보여 결코 가볍지 않은 고통을 느낀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초기의 그 뛰어난 시편에도 약함이 있어 그것을 1973년 구리하라 사다코가 'q히로시마r라고 할 때'를 발표하여 극복을 지향했다. 구리하라로 하여금 28년이 걸린 이 사상.

  "(전략)q히로시마r라고 할 때/ '아아 히로시마'라고 상냥하게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사자들이나 무고한 백성이/ 한꺼번에 당한 자들의 분노를/ 내뿜는 것이다(후략)"

  그래도 재일조선인인 나는 이 시에 왜 '조선'이라는 말이 없었는지 적막감을 느낀다.

  이에 대한 엄중한 대답이 조남철의 '방석' ''이었고 재일의 시인의 말이었으며 이시가와 이츠코의 수작이었다. 또 하마다 치쇼, 미쇼 히로미 등의 시가 표현하는 확고한 사상과 조탁된 말은 나의 불만이 생떼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케도 한다.

  그러나 니시무라 게이코의 '제전'을 읽어본다. 원폭 투하와 굵은 실선으로 이어지는 천황제를 그대로 하고 있는 일본국 시인이 그것을 창피하게 생각지도 않고 '천황제대일본제국'의 식민지지배에 원인 하는 반도 분단의 고통을 깔보는 웃음으로 '원폭시'를 썼다고 선량한 척 한다.

  시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읽으면서 자신을 시험해본다. 핵이 없는 세계, 궁극적으로는 군대를 없앤 지구에 대한 사상과 구상이 이 시집에 있다. 그것에 어떻게 답하고 행동하는가는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의 과제가 된다. 미래를 위해, '비일상'을 경험 할 것을 강하게 권한다.

  (황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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